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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성의전화]제60호 이선미소장님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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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1 14:17 조회2,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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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성의전화]제60호 6월 소식지에 실린 이선미소장님의 칼럼입니다.

 고통 길들이기           
                                                 

  학교 적응 문제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여학생이 전화를 해 왔다. 상담 중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성폭력에 대해 질문했을 때 말하지 못했는데, 1년 전 같은과 남학생에게 성폭력을 당했노라고, 그로 인해 수치스러워 수업을 빠지게 되고 그러면서 학교에 관심도 없어지고 수업도 따라갈 수 없어졌노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성적 수치심의 문제였는데 지금은 대학 생활 전반에 실패로 이어지고 자퇴하고 싶고, 앞으로 인생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다며 울었다. 상담에서 말할 수 없어 고민하였을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성폭력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성폭력 경험의 시점, 수용 수준, 대처방식이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나게 된다. 성폭력 경험 직후에 이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여성들, 만성적인 성폭력에 시달려서 고통에 무디어진 여성들, 오래전 묻어 두었던 성폭력 기억을 꺼내게 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 ..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말할 수 없는 심한 고통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크기에 고통이 없는 듯 행동하기도 하고, 다른 일에 관심을 돌려 그것으로 고통을 상쇄시키려하기도 한다. 이들은 현재의 고통 속에 과거의 상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낸다. 

  성폭력 경험자들이 성폭력 경험을 어떻게 수용하는지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Hayes에 의하면 수용을 크게 세 수준으로 구분하고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은 부정적 정서를 인내하는 단계이다. 이보다 발전된 수용의 단계는 부정적 경험을 기꺼이 경험 하는 단계이다. 수용의 가장 높은 수준은 인지적 탈융합 단계 라고 주장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사고가 진실을 반영하거나 중요하다는 가정 그리고 항상 생각의 내용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사고 과정을 단순히 관찰 할 수 있는 정신적 사건으로 보게 된다. 사고란 그 내용이 아무리 혐오스럽다 할지라도 본래 해롭지 않으며 관찰될 수 있고 왔다가 지나가도록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단계이다. 극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사적인 성폭력 경험에 대한 수용능력을 배양시킴으로서 경험 회피로 인해 유지되는 다양한 정신적 증상들을 회복시킬 뿐 만 아니라 심리적 안녕감을 증진 시킬 수 있다. 

  정서적 불안정과 심한 충동성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수용(ACCEPT)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수용(Acceptance) : 이 순간 내 정서적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단지 난 이 고통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집중(Concentration) :고통 그 자체의 감각에 집중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이나,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말라.

창조(Create): 기꺼이 이런 느낌들을 가지려고 하라. 고통들을 알아차려라. 심지어는 이런 느낌들을 초대하라. 수용하는 감각을 창조하라.

환경(Environment): 무엇이 나에게 희망을 품게 하고, 무엇이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드는가? 내 느낌들 보다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을 생각하라.

기도(Prayer) : 내가 이 정서적 고통을 감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경험들이 끝이 나거나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시간(Time) : 나는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변화할 것을 안다. 이 고통도 결국 지나갈 것임을 단순히 수용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통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이 순간에 수용하는 연습을 하라.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성폭력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에 몰두해서 수용을 거부하다 보면 그만큼의 고통이 더 배가 되어진다.

성폭력 경험 여성들이여! “나는 성폭력을 경험했다. 그로인해 많은 고통을 경험했으나  그 경험을 수용하고 극복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로 이야기가 끝나는 삶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성폭력 경험을 수용하고 행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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